가끔 대리운전을 한다.

그 날도 전화가 왔다. 면목동 어디쯤이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말고 길을 나섰다.

도착한 음식점 앞에는 거나하게 취한 중년 남성 네 명이 있었다.

사내들은 이내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 중에서 나를 호출한 손님을 태우고 운전석에 앉았다.

짧은 인사를 하자마자 시동을 걸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단골손님이라 목적지를 물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대로 차를 몰아 익숙한 그곳으로 갔다.

차를 세우자, 그는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 내밀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후한 편이었다.

기분이 좋으신가? 그리고 나는 그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다. 그는 바로 내 아버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또 자식을 부려먹었냐는 어머니의 성화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가끔씩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서 술을 드시곤 전화를 하신다.

때로는 성가시고 때로는 못마땅했다. 처음엔 대리기사를 부르면 되지 않나 생각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 풍기는 술 냄새가 그리 달갑지 않기도 했다.

꼭 쉴 때는 안 부르고 공부 좀 해보려 하는 참에 전화하시는 것도 마뜩잖았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나는 깨달았다. 그런 식으로 취업준비에 정신없는 자식에게 용돈이라도 좀 챙겨주신다는 것을.

그래서 굳이 집에서 10분 거리에 차를 세우시고 나를 불러내시는 거다.

아버지 입장에선 대리운전비 낼 돈에 좀 더 보태 내게 주실 수 있고,

내 짧은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명목도 얻을 수 있던 것이다.

아버지는 6남1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국민학교 6학년이 될 무렵 다른 형제들은 서울로 갔다.

아버지는 홀로 시골에 남아 내 조부모를 모시고 농사를 지었다.

그 나이에 농사를 짓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 때부터 아버지에겐 모든 불만과 외로움을 속으로 삭이는 버릇이 생겼단다.

표현을 할 곳이 없으니 괜히 화풀이를 했다. 탐스럽게 열린 호박을 괜히 꼬챙이로 찔러서 못 먹게 만들고,

논을 갈다가 괜히 심술이 나 소뿔을 부러뜨려 버리기도 했단다. 아버지의 무뚝뚝함은 그렇게 뼛속 깊이 내재된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농사를 그만두고, 아버지마저 서울에 와서 배운 게 운전이었다.

그 생업이 벌써 삼십여 년이 넘었다. 시내버스와 택시를 오가며 운전만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아버지를 잠시 차에 모시고 운전을 한다고 그의 오랜 인생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일하는 동안 운전대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 그 갑갑함을 잠시 느껴보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태우고 오는 길에는 괜히 이상한 기분에 빠진다.

아버지가 내게 대리 운전비로 가장한 용돈을 내밀 때, 고마움 위로 죄송함이 겹친다.

아버지의 비정규 대리기사가 되면서, 나는 그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텔레비전 그득 채운 요즘 아빠들에 비하면 내 아버진 낙제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아버지의 무심한 행동들에서 그의 삶의 자취와 표현방식을 발견하는 게 재밌다.

요새는 아버지의 대리 호출이 뜸하다. 아버지가 술을 예전만큼 자주 안한다는 이야기라 좋아해야 마땅한데도,

왠지 허전하다.

“부르시면 언제든 가겠습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