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 적 행복했던 명절의 풍경이 새삼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 아버지, 엄마와 살던 시골집에  

타지로 나간 가족들이 모이는 유일한 날이 명절이었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보다는 온가족이 함께 모여

오손도손 정담을 나눈다는 그 기대와 설렘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열 두살 터울의 큰오빠가 결혼을 해서

처음으로 시골집에 새언니가 왔을때의 그 설레임...

예쁜 얼굴과 고운 말씨에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부끄러워했던 기억들....

엄마는 며느리에게 물 한방울 묻히지 못하게 애지중지 아끼시며

올라갈땐 바리바리 싸서 손에 들려주고도 항상 부족했다며 자책했던 엄마...

내 부모라서가 아니라, 우리 엄마는 참 바보처럼 살았드랬습니다.

 

두 명의 올케는 명절때면 엄마 혼자서 모든 음식을 준비해둔

명절 전날밤에 나타나서 다음날 아침 먹고 곧장 친정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런 올케들이 얄미워 궁시렁 댈라치면 엄마 아빠에게 혼이 나는 건 다반사였죠.

잠깐이지만 아버지의 외도로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삭히며 힘들었던 엄마.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도리어 미련하고 말 한마디 못하는 엄마가 한심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그리구선 연민의 정보다는 엄마를 무시하며 살갑지 않은 딸로 살았습니다.

가끔 시골에 내려 갈때면, 정리되지 않은 방, 씽크대의 담가놓은 그릇들..

염색하지 않은 엄마의 흰머리등등 엄마의 모든 것들이 못마땅 했고 창피했습니다.

어거지로  치우면서도 엄마에게 대놓고 갖은 수치심을 주는 것은 예사였죠.

엄마니까 당연히 깨끗하게 치우고 살아야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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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3년동안

내 곁에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 했었는데...

그 엄마가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어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엄마의 생신은 음력 십이월 말일로 설 전날입니다,

엄마는 복조가리도 없지...라면서 생신 한번 챙기지도 않았습니다.

날짜가 예매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한번도 생신상을 받아보질 못했습니다.

"그깟 생일이 뭐가 중요하냐"며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셨던 엄마.

이제야 철이 든 딸내미가 엄마의 생신상을 차려 드릴려는데

엄마는 기다려주지 않고 지금 내 곁에 안계십니다.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나만 바라봤던 엄마의 선하디 선한 눈망울...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버지와 자식들 앞날을 걱정했던 엄마..

엄마라는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가정을 꾸려보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경험해 본적 없는 이 노처녀는

감히 올케나 언니들을 판단 정죄할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동안 한없이 미워했고 원망했던  

올케 언니들에게 진정한 감사의 표시를 하렵니다. 사과와 함께.

 

이제부터는 상대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다름을 인정하며 살것입니다. 

손해 좀 보더라도 

기꺼이 서로 행복해지는 그 길을 선택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