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네"

우리엄마는 60년대말에 자주 놀러온 신촌에 있는 모여대기숙사가 똑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60년대와 90년대의 기숙사가 똑같다는 뜻이었죠,

좁은 방안에는 4개의 병원 철제침대, 가로 세로 50센티의 손바닥만한 정사각형  책상 한방에 4명이 사는거죠

 무슨무슨 경제 5개년계획과 새마을 운동과 올림픽도 이미 다 끝났는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신나는 마음에

그까짓것 아무 상관도 없었고,

기숙사앞 나무 비탈길에서 눈물을 보이는 엄마에게

 나는 그저 부모 떠나 서울생활을 한다는거에

마음이 들떠 엄마의 서운함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대학에 붙어 기숙사 추첨에 당첨되니 우리엄마는 수소문하여

시장에 가서 기숙사 규격에 맞는 이불을 맞췄는데 -

 큰 시장의 이불집은 각 대학 기숙사 사이즈를 가지고 있었고 -가지고 가니 딱 맞춤이었습니다,

 

방에 들어가니 기다리던 2학년언니가 덥썩  인사를 하는데,

처음 들어보는 전라도 사투리로  "야들아, 내가 벌써 방팅주선해놨다야.

내일 k대 기숙사랑 티티카카에서 방팅하기로 했어야. 준비해라잉."  이러는 거였습니다.

그리하여 내 2년간의 끝도 없는 방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거였습니다 

짐을 풀고, 빨간색 금성 카세트플레이어랑 이승환 변진섭 푸른하늘 테이프도 꺼내놓고, 책상에 놓을 백열등 스탠드도 다 풀어놨는데,

대학왔으니 콘택트렌즈랑 소독기도 있는데, 전기 콘센트가 없는겁니다,

방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에서는 콘센트 못쓴다는것이었습니다

뭐시라? 전기 콘센트를 방에서 못쓴다고????  이 말도 안되는 60년대 방식을 경험할줄이야.

그런와중에 자기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다른 방언니가

방에서는 베터리를 칭칭 둘려맨  카세트 플레이어 정도만 쓸수 있고,

콘택트렌즈 소독기는 세면장옆 전기콘센트를 이용할것이며, 머리드라이는 지하의 세탁실, 워드프로세스를 가진자는 1층 식당에서

이용할것을 친절히 알려주었습니다,

. 누군가가 드라이기를 몰래 이어쓰다가 방에서 불이 날뻔했다면서 절대 방에서 전기를 못쓰게했습니다 

공동 목욕탕은 일주일에 2번 저녁시간에 개장하는데, 탕목욕을 할수 있는 장소로 몸매좋고 벗은몸에 민감하지 않은 아이들은 약속을 잡아

뜨뜻하게 목욕하고 서로 등도 밀어줬지만,

몸매 안되고 나체신비주의자들은 부러부러 목욕가방을 싸들고,

신촌 장미여관 옆에 장미 목욕탕까지 원정을 갔었더랬습니다.

더운물은 정해진 시간에만 나오는데  그 시간이 되면 다들 아이스크림 머리를 하고, 대야하나에 치솔통 비누 들고 세수하러 세면장에 가는데 -

세면장에 쭉 ~ 서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다리 번쩍 들어 발을 씻고 세면장을 오가는 아이들로 쓰레빠를 끄는 소리가 복도마다 시끄러웠습니다,

 그게 끝나면 11시에 사감선생님이 오셔서 친히 사람수를  확인하는 점호가 시작됩니다,

이 점호가 얼마나 무서운지 학교앞 지하철역하고 기숙사까지 진짜 먼데

기숙사는 학교 제일 안쪽, 후문에 있었어요

같은 방 언니가 연말에 송년회라고

이쁘게 입고 하이힐도 신고 나갔는데, 지하철역에 내리고 보니 점호시간은  10분 남았고,

하이힐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서 손에 하이힐 들고 맨발로 뛰었답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언니 스타킹 바닥은 다 날아가고 발등 부분만 펄럭펄럭...

그 추운 겨울에 스타킹만 신은 맨발로 뛸 생각을 다 할 정도로 기숙사 점호가 무서웠어요.

3번인가 지각하면 강제 퇴실. 무단 외박해도 강제 퇴실.

부모한테 전화해서 당신 딸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퇴실 당한다고 알리기 때문에

무척 무서웠습니다.

점호 후  우리는 밤에 피는 장미처럼 미리 사다놓은 떡볶기 먹는 모드에 돌입,

순대 만두 떡볶이 배터지게 먹으면서 남자이야기에 꽃을 피웠습니다.

장래나 취업이야기 따위는 없었습니다

. 여름이되면 10시전에 교문밖을 휘적휘적 나가

문닫기 직전의 분식점에 들러 떨이딸기가 듬뿍 들은

빙수를 배터지게 먹었죠. 이거슨 진정한 기숙사인이 아니면 즐길수 없는 행복이라며 모두들 딸기반 얼음반에 환호성을 지럿습니다,

왜, 매점에는 안성탕면만 팔았던건가.   그때도 라면은 종류가 많았는데...

대부분 아이들이 라면을 커피포트에 끓여먹었는데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그 안에 안성탕면을 통채로 집어넣어 끓는동안

기숙사 냉장고에 혹시 김치가 없나 찾아다니곤했죠,. 전국방방곡곡 엄마들이 보내주신 김치들도 학생용 냉장고에 있었는데

다들 자기 김치에 "김땡순" 이렇게 이름붙여서 도난방지 이름표를 붙엿는데  간혹 김치도둑이 있어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나만 그랬는지 다들 그랬는지, 대학을 가는것이 목표이지

대학이후에 별 목표없던 철없던 아이들이 많았던지라,

나의 학점은 유명투수의 방어율과 맞먹을정도였는데 게중에 간혹 공부를 열심히 하는애들은 기숙사 안에 있던 도서실에서 열공하던 기억도 납니다,

나는 뭐, 이틀걸러 방팅, 조인트 동문회.  밤 10시 50분에 학교역에 도착하여 10분만에 기숙사까지 뛰어들어오는  축지법을 발휘한적도 여러번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칼루이스 수준으로 달린겁니다,

 

깨끗한척 하지만 진짜 드러운 것이 20대 여자임이 분명합니다 .

한번도 안해본 빨래를 하려니 괴롭기도 했지만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세탁기가 없이 손빨래를 한다는 것이었죠.

이게 말이 안되는거지. 세탁기가 없을수 있다니.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건, 다들 솔 하나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청바지를 빠는 용도. 청바지를 척 펼쳐놓고 솔로 쓱쓱 문질러서.

손빨래를 해야하니 빨래를 비눗물에 담궈놔야 그 때가 빠지는데

게으른 아이들은 몇날몇일을 방치하여 결국은 빨래에 곰팡이가 피고

한해에 팬티와 양말을 50개 이상씩 사던 아이들이 그때의 기숙사 아이들 밖에서는 온갖 깔끔 떠는 아이들이 기숙사에서는  진짜 더러웟어요

그와중에 우리 방언니는 곰팡이 제거법을 터득했다면서 알려주곤 했습니다 ..

전국방방곡곡 여학생들이 모여 전국방방곡곡 사투리로 떠드는데 지역감정 완전 격해질때가 있었으니

식당에 모여 프로야구 플레이오프/결승전에 지방팀들이 올라갈때였던겁니다,  

도끼눈으로 서로의 팀을 응원하다가 살벌한 분위기로 째려보며 응원하는데,

그러다가도, 방학이 되기전에 다들 지방으로 돌아가면 SBS가 안나오니까 한마음으로 아쉬워하면서 드라마나 쇼같은걸 시청했는데...

뭐 지방사람들은 모래시계 못봤다고요? 그래 못봤다 왜???!!!!

그러던 시절이니,

7대의 전화로  6백몇십명이 나눠쓰는 시스템이라, 기숙사에 친구가 많은 사람이나

사생의 남자친구들은 7대 전화번호를 기본으로 다 외우고 했습니다 .

수십번을 시도해야 한번걸리는전화.

그러면 기숙사 서무 언니가 방으로 방송을 해주는데, "김땡순 3번전화 받으세요" 그럼 최선을 다해 전화기가 있는곳으로 뛰어야 하는겁니다.

각 층에 전화모여있는데가 있었습니다,

조금늦게 뛰다가는 흔하게 전화가 끊어져버리고 맙니다. 왜냐, 대기기간이 너무 길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밑에서 끊어버리는거죠.

당시는 이메일도 없고, 연락은 전화나 아니면 어디 서점앞이나 다방같은곳에 붙여놓은 메모로 하던시절에,

식당이 있던 2층에는 우편함이 있었는데 그게 꼭 한약방 서랍처럼 생겨서 방방마다 하나.

좋아하는 남자에게 손편지가 오면 가슴 절절하게 읽던 재미가 있었는데^^.

저녁식사식권은 15개, 그럼 반은 안에서 반은 밖에서 먹으라는 소리인거죠.

원래 안에서 먹는 친구는 주로 안에서, 밖으로 돌아댕기는 애들은 식권이 남아돌아서 남는걸 서로 나눠주기도 하고,

제일 힘들었던 건, 메뉴가 1-2개월 단위로 돌아가니까 처음엔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이 물려서 나중에는 거의 못먹고 주로

나가서 사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기숙사밥이 지겨운 나는 맨날 친구들에게 분식 가서 순두부찌개먹자고 꼬시곤 했는데 당시 친하던 남자애가

"왜 여기는  밥을 반만 줘요?" 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기숙사는 점심도 주니까 점심먹고, 낮잠자다가 수업못가던 애도, 제육볶음만 나오면 밥 세번 받아먹던 우리 방언니도

지금은 자기애들 공부하라고 등짝때리고 밥제대로 먹으라고 잔소리할까요? 

 

일주일에 두번인가 세번인가는 모닝빵에 버터 그리고 커피가 아침으로 나왔는데,

분명 무지 맛이 없었을 커피일텐데 아줌마가 노란주전자에서 내컵에 따라주시던 그 커피향이 지금도 무진장히 그립네요.

그리고 그놈의 공중전화, 그 앞에 서서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전화로 연애질 길게길게 하는 기집애들 무진장  욕하면서도

 부러워하면서도 일주일에 두번정도는 엄마한테 전화해야 하니까 이삼십분 보통으로 서서 전화하기를 기다리던때가

정.말. 엊그제 같습니다...

.

정말 그리운 추억 중에 하나가 기숙사 오픈하우스 때 가수로 김광석 씨가 왔었어요..

오픈하우스 때 일종의 쌍쌍파티였는데 남자친구 없는데 김광석씨  보기 위해 급소개팅한 추억도있고

그런데 그넘의 망할 다방 이름 때문에

학교앞에 사람 헷갈리게 티티카카, 티카티카 이름 비슷한 다방이 둘 있어요. 그리고 둘다 영문으로 더 큼직하게 쓰여져 있어서

소개팅이나 미팅할 때 종종 혼선이 빚어지곤 했어요. 그때 삐삐도 없던 시절이니

서로 엉뚱한 다방에서 무작정 기다리다가 안 오면 바람 맞는 걸로 씩씩대고 일어나곤 했죠.

그때 그 방팅에 나왔던 촌놈 k대생들도 45살 머리 희끗한 아저씨가 되어있겠네요.

요즘 저희보다 좀 어린 친구들이 "토토가"에 열광하는걸 보다가,

문득, 매미소리 가득하던 90년 기숙사의 추억이 생각나서 제 추억놀이로 그냥 적어봤어요.

신청곡은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