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창문을 열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가구 수는 20여 남짓도 되지 않는 작은 섬마을, 소연평도.

가게도 없어 육지에서 일주일에 한 번 배가 들어올 때만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그런 마을.

89년 10월. 그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어요.

포크레인으로 일을 하던 제 남편은 빨간 날(성탄절도 포함)에도 쉬지 않고, 그냥 비가 오는 날이 쉬는 날이었어요.

 

성탄절 아침.. 그 날도 어김없이 남편은 일을 하러 나갔어요.

나가면서 제게 “작업복이 뜯어졌는데 좀 꿰매줘.” 라고 하더군요.

아.. 이를 어쩌나. 저는 날 때부터 약시여서 한 번도 바느질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바늘에 실을 꿰는 것조차 제게는 아주 힘든 일이었거든요.

 

만약 인천 시내에 살았더라면 세탁소에 맡기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그 작은 마을에는 흔한 세탁소 하나 없었어요.

동네 사람들에게 실을 끼워달라고 하기에는 젊은 새댁이라 자존심도 상하고..

남편에게 끼워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남편에게는 제가 시력이 나쁘다는 걸 말한 적이 없었어요.)

 

하루 종일 고민도 하고, 울기도 하고, 거의 체념한 듯싶을 때 빨갛게 노을이 내리더라구요.

이제 좀 있으면 남편이 돌아오겠구나. 하든 못하든 일단 도전이라도 해보자, 마음먹고 반짇고리를 열었어요.

 

[ 실은 내가 꿰놓고 가. 미안해. 너무 힘든 걸 부탁했나? 사랑해.]

 

말한 적도 없는데 내가 눈이 나쁜 건 어떻게 알았는지, 남편이 실을 꿰어 둔 바늘과 함께 메모지를 반짇고리 안에 넣어놓았더라구요.

남들이 보면 별것 아니겠지만, 그때 당시 저는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 감동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요? ^^

메모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우느라 바느질을 하지도 못할 정도였죠.

결혼한 지 2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가가 시큰하네요.

 

신데렐라가 유리 구두를 신고 호박 마차를 탔을 때 이 정도로 감동을 받았을까요?

전 제가 더 큰 감동을 받았을 거라 자부해요. ^^

 

그 후에 어떻게 되었냐구요?

앞서 말했듯 일주일에 한 번만 배가 들어오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수도 없었죠.

우린 그냥 초코파이 몇 개에 성냥개비를 꽂고, 와인 한 잔씩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어요.

주고받은 선물도 따로 없었지만 남편의 배려와 감동이 제겐 곧 선물이었죠.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랍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추억은 삶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