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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버지의 노래
작성자 : 이상진(now138)   등록일 : 2016-02-22 오후 11:52:04

신청곡 :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 영일만 친구 / 애비


수능이 끝나고 성인이 된다는 것과 대학생이 된다는 것, 2가지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던 20살의 첫 해의 1월. 하지만 제게 다가온 20살 청춘의 첫 관문은
기쁨이 아닌 슬픔이었습니다.

두 형제를 키우시며 평소에는 술과 담배보다는 책과 낚시를 즐기시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간경화 진단은 한겨울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만큼 어린 제 마음 속을 후벼 팠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왜 하필
우리가족에게 생길까, 거짓말이겠지? 만약에라도 아버지께서 잘못되면 우리가족은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야간자율학습에 시달리던 친구녀석들은 모처럼 맞은 해방감에 제게 하루가 멀다하고 놀러
가자는 전화가 왔지만 저는 그런 친구들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발 아니길 바랐건만
아버지의 확진판정이 내려지면서 그 날 저녁 아버지는 대형병원으로 입원절차를 밟았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손발이 붓고 피곤함을 느끼셨다는 아버지께서는 설마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시다 복수가 차면서부터 몸의 이상함을 알아 차리셨다며 한참을 침묵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이들이 기 죽거나 마음 약해지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시며 다독이시곤 했죠.
"아버지 괜찮아. 곧 퇴원하신대. 요즘 의학기술이 좋아서 이런건 병도 아니래."

일주일 정도 진료실과 병실을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오가시며 아버지께서는 몸도 마음도 지치실
대로 지쳤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부재로 인해 가족들이 심적이나 경제적으로 고통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 하셨죠.

아버지의 투병으로 놀라신 친척분들의 도움으로 애써 마음의 무거운 짐을 덜 수 있었지만
우리가족의 바람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완치였습니다. 하루 12시간씩 순번을 정해 어머니께서
오후까지 병실을 지키시고. 오후 8시가 되면 입학 전과 입대 전, 시간적 여유가 있던 우리형제가
과외와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자리를 지키곤 했죠.

온 가족의 염원에 하늘이 도우셨는지 입원 6주가 지나 아버지께서는 퇴원이라는 희망을 선물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투병기간 동안의 기억은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과 생존의
절실함을 남들보다 일찍 맛본 순간이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의 소변을 받거나 혈압과
혈당 수치를 재기 위해 새벽에 눈을 떠야 했고, 혹여나 링겔상태나 아버지의 통증이 있을까
뜬 눈으로 하루를 보냈죠.

처음에는 아버지 침대 아래에서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했지만 아버지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원장님의 배려로 2인실을 아버지 혼자만 쓸 수 있게 되면서 편안하게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찬 바람이 불면 더욱 매섭게 느껴지던 14층 병실, 달빛인지 별빛인지 몰라도 창문과
커튼 사이로 비치는 빛을 보며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곤 했죠. 당신의 병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을 억지로 누르시며 아버지께서는 나즈막하면서도 차분하게 묻곤 했죠.
"아들, 아빠 밉지?"
"아뇨."
"아빠는 아직 우리가족하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그게 참 안 따라주네. 만약에 아빠 없어도.."
"아빠 안 들을래. 나 잘거에요."

대화가 길어지면 애써 참았던 20살의 무게감이 아버지께 들킬까봐 일부러 중간에 말을 잘랐던
아들의 마음을 아셨는지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몸을 일으켜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병실 복도에서 나즈막히 들리던 멜로디가 있었죠. 딱딱한 병실 분위기에
환자들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고자 병원에서 들려주던 최백호 님의 앨범들.

항상 그 멜로디를 들으며 창 밖을 바라보며 애써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그 멜로디에 눈물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멜로디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가 밤새 반복되던 멜로디가 끝날 즈음,
눈이 떠 또 하루의 힘겨운 삶의 무게에 부딪히던 그 시절의 노래.

퇴원하던 날, 가족 얼굴을 좀 더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쏟으시던 아버지께서는 다행히
퇴원 후 철저한 식사와 건강관리로 재발 없이 완치판정을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투병시절 그렇게 바라셨던 아들들의 군대면회와 대학졸업식, 직장생활과 결혼식 참석의 꿈을
현실로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최백호 님 노래를 들을 때면 기쁨과 슬픔이 겹쳐지는 미묘함을 느끼게 되지만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과 삶의 절실함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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