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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비운의 다이애나 비
작성자 : 허남준(skawns12)   등록일 : 2015-01-18 오후 8: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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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ss diana wedding 1981 Majesty

1981년, 전 세계 시청자들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런던 세인트폴 성당에서 왕세자 찰스와 결혼식을
올린 후 마차에서 손을 흔들던 유치원 교사 출신의 스무살의 다이애나는 말 그대로 동화 속 주인공
신데렐라였습니다. 전세계 7억 5천만명이 TV로 관람한 그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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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왕자와 헤리왕자를 낳고 행복해 보이던 다이애너비, 그러나 그건 연출된 행복이었습니다.
그녀는 연적이 있음을 결혼전부터 알았다고 합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인터넷판에 의하면
당시 19세의 다이애나비는 찰스 왕세자로부터 청혼을 받기 몇 주 전 자신의 의붓어머니 레인
스펜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름 대신 '그녀(she)'라고 칭하는 불가사의한 여성에 대해 이야기를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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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비는 지난 1981년 1월18일에 쓴 이 편지에서 "'그녀'에 대한 대화로 돌아가자면, 나는
너무 길지 않게 2주 반 정도 호주로 떠나는 것이 나에게도 옳고 우리 둘(다이애나비와 찰스 왕세자)
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적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다이애나비는 계획된 호주 여행을 떠나면서, 찰스 왕세자를 런던에 홀로 남겨도 되는지
고민했고, 이는 아마도 '그녀'라는 다른 여성의 존재를 걱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합니다.




순진하고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보지 못했던 다이애나는 자신이 황태자비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고
흥분하여, 결혼만 하면 유부녀인 '그녀'쯤은 해결되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32세의 노총각
찰스 왕세자에게 결혼은 왕좌에 오르기 위한 통과의례였고, 순진무구, 건강해 보이는 스무살의
처녀를 왕실 배우자로 편의상 선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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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이애너는 호락호락 복종하는 상대가 아니었지요. 어린 시절 그녀는 언니보다 예쁘지도 않고,
부모가 일찍 이혼해 외로움을 잘 탔으며, 결혼 후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하고 사랑해주지 않아 고통스러워했고, 왕실 가족조차 자유분방한 그녀를 못 마땅해해 갈등을 빚었습니다. 카밀라 파커볼스로 인해 챨스와 다이애너는 불화했지만 왕세자 신분때문에 자신들의 갈등을 감추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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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기 다이애나

카밀라에 대한 질투와 찰스에 대한 불신...그녀는 손목을 긋기도 하고 폭식증과 구토, 거식증으로
야위어 갔습니다. 정신의학회지에는 다이애너의 '경계성 정신병리'에 대한 논문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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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의 마음을 잡아준건 두 아들이었습니다. 15년간 황태자비로 살았던 것은
오로지 두 아들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훗날 그녀는 해리왕자가 태어난 후부터
챨스에게서 마음이 완전히 식었다고 고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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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자비는 패션과 봉사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자신 보다 인기가 더 높은 그녀때문에 찰스황태자도,
앤공주, 엘리자베스 여왕 모두 당황하며, 경계하기 시작...그녀의 대외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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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그들..
1992년 11월 초, 두 내외가 방한했을 때 그들은 불화를 감출래야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만찬장에서도 기자회견장으로 가면서도 그들은 이렇게 밖에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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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영국 상품전을 둘러보고 있는
다이애나 왕세자비. 오른쪽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1992년 그녀는 왕실전문 작가를 찾아가 자신의 암울했던 결혼생활을 낱낱이 고발하는 책을 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별거를 선언합니다. 마침내 1994년에는 다이애너는 영국 BBC 방송에 출연, 인터뷰를
하여 찰스를 공격하고 왕실을 곤혹스럽게 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인터뷰 직후, 두사람이
이혼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혼후, 그녀는 다이애너 스펜스란 처녀 이름을 되찾고, 웨일즈 공작부인(공식직명 :The Princess of Wales)이 되었지요. 그녀는 두 아들의 양육권을 나눠 가졌고, 거액의 위자료, 켄싱턴궁에서 살 권리를

부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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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30일 파리 엘리베이트에 찍힌 다이애너와 도티
영국 헤롯백화점 소유주의 장남 도티 파예드는 '불의 전차'등 헐리우드 영화를 제작한
영화제작자였습니다. 두사람은 지중해에서 여름휴가를 보낸후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다이애나는 그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녀는 딸을 낳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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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디 파예드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다이애나가 사고 당시 자신의 아들과 결혼할 계획이었으며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 왕세자비가 이슬람 아기를 낳기를 바라지 않는 영국 왕실이
MI6 등 영국 정보기관 요원들을 동원해 이들을 암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Princess Diana's Funeral



Diana - Her True Story (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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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절의 왕실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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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과 승마 코치였던 전 기마의장대 장교 제임스 휴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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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생전에 진짜 사랑한 정부는 하스넷 칸이라는 파키스탄 출신의
심장외과의사였다고 집사였던 폴 버렐이 미국 ABC방송 회견에서 밝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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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너의 모든것을 알고있는 집사 버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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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님///술 한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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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awns12 소영 pdj님 월요일은 술 파티네요 ㅎㅎㅎ~~~~~ 2015-01-18
chdk34 죽음이란 두글자에는 부귀영화가 함께 사라지네요 ㅠㅠ 2015-01-19
skawns12 안녕하세요 인성님 이제 자주 뵈요 ~~~ 2015-01-20
건반 소리에.8시구나 하네요.
사랑은 답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