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청춘은 배순탁이다‘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베스트셀러다. 베스트셀러가 양서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되는 건
아니다. 직접 구입한 건 아니지만 행사로 받게 된 이 저서를 한 번 정독한 뒤에 곧바로 헌책방에
팔아 버렸다. ‘청춘’을 곡해하고 왜곡하고 저자 자신이 누려왔던 풍요로움에 제한적인 시선만
저서에 반영해 현재 청년들이 겪는 아픔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아프니까
청춘인 게 아니라 아프면 슬픔이고 비극이고 고통이다. 연령대를 불문하고 닥치는 비극은 그게
청춘이라며 여유를 갖고 대처할 게 아니라 하루 빨리 벗어나야할 지옥이다.
가진 건 많으나 시선이 좁은 기득권들이 아파서 청춘이라는 공허한 구호를 외치며 절망만
가득한 이 시대를 기만할 때 정반대의 삶으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된 이가 있다. 유년시절
품었던 장래희망을 추억의 한켠으로 밀어내고 모두들 쉽게 한 달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생활을 할 때 배순탁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로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팝송을 두루 들으며 음악캠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돼
버렸다. 흔히 어느 여타 프로그램에서 작가들이 갖는 경제적인 불안감이나 과다한 업무 같은
3D 업종의 방송 작가는 배순탁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방송 작가 이기 이전에 팝송을 열심히
듣고 그에 대한 비평을 하는 음악 평론가의 정체성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을 달리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이 아닌 음악 평론가로서 불혹에 나이에
도달한 필자가 국내에서 ‘연예인’이 아닌 ‘작가’들의 음악을 심도 깊게 분석한다. 저서에서
다루는 작가들의 역량은 전문적인 비평이 아니라 저자가 그 작가들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상이나 음악을 듣기 전 그들의 첫인상까지 첨부돼 곡에 대한 소개와 감흥을 맛깔나게
서술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철학, 인문학에 경계 없는 통섭을 실현한 영화
비평이 대중들에게 너무 전문적이고 학구적이라며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 장벽이 형성됐으나
배순탁은 저서에서 자신이 안다고 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하기 보단 순수한 음악
애호가의 모습을 보인다.
케이블 방송에서 90년대에 복고 코드를 씌워 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의 향수를
자극한 드라마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저자 또한 그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이로 90년대
작가들을 두루 다루며 대기업이 대한민국의 생계 살이를 팍팍하게 만들 듯 아이돌들이 집권해
다양성이 제거된 대중 음악계에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작가들의 존재가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저자가 음악을 듣게 되는 순간은 대부분 일방적인 ‘야자’가 실시되던 인문계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징병을 당해 소중한 2년여의 시간을 빼앗겨야 했던
군대 시절이 주를 이룬다. 소위 말하는 ‘꼰대’라 불리는 이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참 하지 말라는
게 많다. 그게 바로 야자 할 때 귀에다 이어폰을 꽂지 말 것과 군대에서도 일‧이병 때는 아예
음악을 듣지 말라는 거다. 본인은 운 좋게 간부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CDP와 노트북을
반입해 사병들이 누리지 못하는 온갖 자유를 누렸다. 그 자유를 누리면서도 짜증났던 순간은
TV를 지배하는 걸 그룹들이었다. 배순탁이 군대 생활을 할 때나 본인이 군대 생활을 할 때나
군대는 사람이 되는 곳이 아니라 바보가 되는 곳이다. 아이돌은 음악이 아닌 소위 말해 성을
상업화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군인들의 억압된 성을 자극하는덴 최고이자 지속적으로
전체주의를 실현시키기에 안성맞춤인 도구다.
90년대 ‘작가’들에 대한 감회와 감동적인 순간을 회고하는 사이드 A, B 말고 히든 트랙에선
서구 ‘작가’들을 소개하며 풍성한 음악 여행을 인도한다. 이런 본질적인 음악적 감상평
이외에도 이 저서가 ‘청춘’이라는 코드로 더 인상 깊었던 점은 저자 자신의 씁쓸하고 아렸던
청춘의 시절을 독자들에게 과감하게 수필로 공개해 현 혹독한 시기를 맞이하는 세대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현재 화요일 코너 ‘배신의 한수’에서 다소 과잉으로 까지 판단되는 예능 감을 실현하려다
대부인 배철수에게 핀잔을 듣거나 심지어 꾸중까지 들으면서도 프로그램의 유쾌한 분위기를
실현시키는 그이지만 작가들의 음악 설명 뒤에 이어지는 저자의 개인사는 이런 웃음과는 정
반대다.
군사 독재로 인해 이미 만신창이였던 대한민국을 더 수렁으로 몰아넣었던 계기는 IMF다. 그
이후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비정규직이 생겨나고 만성적인 취업난이 들이닥쳤고 가진
자들의 범죄행위는 증가했지만 국가기관은 그들을 호위하기에 바빴다. 필자의 부친 또한
IMF를 맞아 생계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고 저자는 20대 동안 월세를 전전하며 서울 지역에서
이사만 십여 차례 했다고 한다.
게다가 첫 연애에서 시대적인 아픔 탓에 실연을 겪게 되고 대학 시절엔 학비를 대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풍족한 생활을 해 보지 못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대해 불만이 가득차고 비관적인 생각을 했을 테지만 배순탁은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자가 모든 것에 막연하게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기대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작가는 현재 위치에 오르기 위해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음악이라는 끈을 놓지 않은 것이고 결국 취미에 불과했던 걸 직업으로까지 이어가며 ‘성공’을
이룩한 이가 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은 경쟁률 강한 고시에 합격하거나 대기업에
입사해 빠른 승진과 고액 연봉을 받으며 외부적으로 자신이 중산층이 됐다고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일 테지만 배순탁은 이런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청년시절부터 좋아하고
즐거워했던 분야를 직업으로 삼아 성공했다. 올해 안타깝게 ‘마왕’인 신해철이 갑작스럽게
고인이 됐을 때도 그 전에 필자가 자신이 신해철을 만나면 큰 성공을 한 것이다라고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저서에서 밝히는데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배순탁이 보여준 성공은 그 가치가
정신적이고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성취감에 기댄 것임을 증명한다.
저자 배순탁은 특목고 출신이나 딱히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그 대학에서도 F를 줄줄이 단
성적표로 공부의 무용성을 입증하며 취업난에 허덕이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스펙이 인생의
다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작가가 스스로 청년층들에게 스펙이 소용없으니 쌓지 말라고
강조한다기 보다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냄으로서 세상살이가 꼭 기득권층들이 요구하는
틀에 맞춰 생각할 필요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조언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배순탁의 저서가 나오기 전에 목요일 코너 ‘스쿨 오브 락’의 음악 평론계의 거목 임진모의
‘팝, 경제를 노래하다’도 출판됐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신구 평론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접근
방법은 다르지만 음악에 대한 더 좋은 감상이 되도록 양서를 출판했다는 소식은 절망의
대한민국에서 작지만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기성세대가 시키는 데로, 정해진 레일위로만 간다고 해서 그게 모든 성공의 지표와 만족의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 배순탁은 자신이 어려웠던 청년기를 불굴의 의지가 아닌
음악을 좋아하는 순수한 기호로 버텨냈고 좋은 음악만큼이나 주변에서 자신과 문화적인
코드가 맞는 좋은 이들을 만나 음악을 듣는 영역을 넓혀왔고 그 시선을 확장해 왔다. 저서는
경제적인 성공이나 인정투쟁의 성취를 과시하는 것 보다 배순탁처럼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즐기다가 그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은 또 다른 성공의 길을 보여주며 우선적으로
팍팍한 삶을 팍팍하게만 살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걸 통해 스스로 즐겁게 살 것을
권유한다.
